우경화의 시대

"바바는 언어가 달라져 버리면 하나의 나라를 이룰 수 없을 뿐더러, 하층계급의 대다수가 국사(國事)라는 중대문제로부터 배제당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지요. 결국 영어를 제것으로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일반대중과 엘리트의 언어 두 개가 생겨나고, 중요한 일을 모두 영어로 처리하게 되면 영어를 쓰는 엘리트만이 국사를 담당하게 되고 만다, 결국 대중은 국사로부터 소외당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루야마 마사오·가토 슈이치, 임성모 옮김, 『번역과 일본의 근대』, 이산, 2000, 51면.


*바바 다쓰이(馬場辰猪, 1850~1888)

이 주장을 바바 다쓰이는 19세기에 했다.

대한민국 『국어』 교과서에서 맨 처음 배우는 말이 '황소개구리와 우리말'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거기에는 민족이 있지만 계급과 인민은 없다. 거기에 바바 다쓰이식 논증이 한 줄이라도 있던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나의 소원」과 「기미독립선언서」를 배울 뿐, 「조선혁명선언」과 「조선민족의 진로」를 배울 수 없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교과서는 민족과 독립을 운운하지만 계급도 통일도 해방도 설 자리가 없다. 민족의 독립을 운위하면서 노동 계급을 압살하고 분단을 획책한 당사자들을 아직도 옹호하고 비호하는 조국의 교과서가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스스로 초래한 좌익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에 대한 장해들이 점점 줄어간다는 명백한 징조만큼은 우리도 보고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이 시대는 우경화의 시대 또는 이승만 박사의 세기이다!

총력전

  전쟁의 영향 아래 독일은 입헌 군주정에서 살짝 겉모습만 가린 군사 독재로 바뀌었다. 황제는 의례 기능으로, 의회는 전시 공채 발행 법안을 차례대로 승인하는 것으로 축소되었던 것이다. 공채는 오로지 독일이 최종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에만 상환할 수 있었다. 서방측에서는 세금이 인상되었다. 그러나 전쟁 비용의 많은 부분은 미국에서 부담하였기 때문에 연합국들 역시 부채의 덫에 걸렸다. 왜 전쟁이 그렇게 오래 지속되었는지 그에 대한 이유는 많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양측에서 전쟁 비용을 대는 방식이 큰 역할을 하였다. 대전은 모든 물질적 자원을 집어삼켰고, 시민 생활을 파괴하였으며, 군에 유례 없는 권력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공공 담론을 질식시켰고, 통화 팽창을 유발하였으며, 적절한 상환 한계를 넘어서 공적 부채를 확대함과 동시에 국외 자산을 저당잡혔으며, 소기업을 죽이고 해당 국가에 전례 없는 경제적 독재를 초래하였다.
  독일에서는 정치가 침묵에 빠졌으며 외교는 마비되었고 총동원은 독자적인 동력을 창출하였다. 대부분 각 분야의 저명한 인물로 구성된 400명의 독일 대학 교수들은 서방 강대국들이 러시아 야만주의의 편을 든 것, 또 종교는 없이 유물론만 가진 것을 격렬하게 비난하였다. 독일은 포위되어 방어 전쟁을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이제 독일은 전략적인 전쟁 목표를 선언함으로써 전 유럽에서 그들의 이해관계를 지킬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전쟁 목표가 국가들을 전쟁으로 몰고 갔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쟁이 전쟁 목표를 창출하였다. 전에는 없었던 의미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면서, 또 열정을 쓰리린 종말까지 무한정으로 부추겼던 것이다.

미하일 슈튀르머, 안병직 옮김, 『독일제국 1871~1919』, 을유문화사, 2003, 123면.


- 잡담

"혁명무력"을 가지고서 "특별행동"을 하겠다고 한다.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한가. 나만 불안한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으며 해야 하는가. 모르겠다.
이북에서 보수 언론을 맹비난하자 조선일보에도 꽤 격한 사설이 실렸다(원문).
북한 권력층의 비정상적 정신 상태는, 실패할 확률이 큰 장거리 미사일을 김일성 생일잔치 이틀 전에 발사했다 실패해 잔치 분위기를 망쳐 버린 데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런 비정상적 상태에선 대남 도발로 그 창피를 만회해야겠다고 생각할 가능성도 있다. 광란적(狂亂的) 협박이지만 최대 경계로 대응할 필요가 있고, 만일의 도발에 대해선 그 몇 배의 몽둥이로 제정신이 들게 하는 수밖에 없다.

라고 한다. 맞다. 국가의 동인으로 상처 받은 자존감을 회복하려는 의지는 충분히 강하게 작동한다.
독서 예정 목록의 최우선 순위로 두 권을 올려둔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1권과 양준희의 『티모스와 국제정치』. 책을 다 읽고 싶으니 동북아시아가 몇 달만 더 평화롭게 유지되어 주면 좋겠다. 선거철에 단 한 명의 표심도 움직이지 못하는 내가 반도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증오

  김일성 부대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멈출 수 없고 밥도 지을 수가 없어 생쌀과 눈을 씹으면서 도망쳤다. 대원들은 이미 발에 쥐가 나는 등 한계에 달해 있었다. 그리하여 김일성과 뤼뽀치 정치부주임이 상의하여 더이상 도망쳐도 별 수 없으니 매복 공격을 하자고 했다. 부대가 매복해 있는 곳에 마에다 부대가 나타났다. 김일성의 피스톨 발사를 신호로 일제 사격을 하여 방심하고 있던 마에다 부대를 거의 전멸시켰다. 총 140명 정도였던 마에다 부대는 대장을 비롯하여 120명이 죽었다.
  그러나 심각한 것은 마에다 부대가 거의 조선인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김일성 부대는 자신들과 싸우고 있는 경관들이 조선인이란 사실을 마지막에는 알지 않았나 생각된다. 생존자는 김일성 부대가 "총을 버리고 손을 들라, 명령에 따르는 자는 죽이지 않는다"고 목이 쉬도록 외쳤으나 마에다 부대 대원들은 한 사람도 항복하지 않았다고 증언하였다. 마에다 부대가 전멸한 장소에 1년 뒤에 세워진 현충비에 따르면 "한 선계(鮮系) 대원은 마지막에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자 천황폐하 만세를 높이 외치며 순순히 죽어갔다"고 한다(『게이유』[警友] 고오토쿠[康德] 8년[1941] 5월호, 88~89쪽). 조선인 경관이 마지막 순간에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면 총을 겨누고 있던 김일성 부대 대원에게도, 김일성에게도 들렸을 것이다. 천황제의 무서움을 오싹할 만큼 느꼈을 것이며 동시에 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더욱 깊게 한 사건이었다고 여겨진다. 이 현충비의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단 한 명의 비적이 산야에 잔존해도 일거에 그 목을 잘라 그 피를 묘 앞에 흐르게 하리라. 살아 있는 우리는 맹세코 당신들의 복수를 해 주리라."

  이것은 문장의 수식이 아니다.

와다 하루키, 서동만 옮김, 『북조선』, 돌베개, 2002, 52-53면.

사설 스크랩

"조 청장이 도대체 무슨 진실을 자기 속에 담아두고 있기에 이렇게 국민을 계속 농락하는지 모를 일이다."(원문) 社說이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신문이나 잡지에서, 글쓴이의 주장이나 의견을 써내는 논설"이다. 그런데 이 작금의 사태에 대한 자기 주장은 없이 저도 같이 사건의 진상을 궁금해 하는 데서 社說이 끝난다.

살아 있음 잡담

1.

실존이라 함은 무엇의 실존인가. 즉, 삶을 영위하는 자기를 무엇으로 규정하는가. 몸인가, 마음인가, 이름인가. 가진 게 없는 사람일수록 자기를 몸에 동일시할 것 같았는데, 최근에는 오히려 그럴수록 자기 이름에 동일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간혹은 이성적이지 않게도 이름에 목숨까지 걸면서 '산다'. 투키디데스가 인간을 움직이는 힘으로 명예까지 언급한 건 그래서가 아닐까. 명예라고 옮기자니 거창한 표현이지만 실상은 자존심 정도에 해당하는 말일 테다.


2.

누구에게나 세 가지 다 중요하다. 몸의 실존, 마음의 실존, 이름의 실존이 모두 중요하다. 지금은 이름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은 모욕 못지않게 모욕을 견디는 일을 미워하고, 다른 사람에게 칭찬 받는 일을 즐거워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나는 칭찬 받는 일을 즐거워하는가. 겉으로는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뛰어난 사람이 뛰어나다고 평가해야 평가가 즐겁다. 이름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름을 중요하게 만드는 삶을 살고 싶다는 뜻이다. 그런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그러면 나는 왜 나보다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것 같은 사람의 평가를 신경 써야 하는가. 그의 평가가 나의 몸의 실존과 마음의 실존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나는 이름의 실존이 걸려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몸과 마음의 실존을 위해서 공연히 이름을 위해 사는 척을 하고 있다. 이것은 변절이나 위선과는 다른 의미에서 고통스러운 것이다.


3.

아프면 기운이 없다. 기운이 없으면 의욕이 없다. 의욕이 없으면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능력을 발휘할 수 없으면 좋게 평가될 수 없다. 저평가는 몸의 실존을 위기에 빠뜨려서 다시 아프게 한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사회의 악순환을 이야기하면서는 구조를 형성할 수 있는 독립변수에게 도덕적 책임과 해결의 의무를 지운다. 개인적 요인에 의한 개인 삶에서의 악순환을 이야기하면서는 무책임하게 들릴지 모르나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는 순간까지 어떻게든 버텨내야 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론, 과학 스크랩

theory (http://www.etymonline.com/index.php?allowed_in_frame=0&search=theory&searchmode=none)

1590s, "conception, mental scheme," from L.L. theoria (Jerome), from Gk. theoria "contemplation, speculation, a looking at, things looked at," from theorein "to consider, speculate, look at," from theoros "spectator," from thea "a view" + horan "to see" (see warrant). Sense of "principles or methods of a science or art (rather than its practice)" is first recorded 1610s. That of "an explanation based on observation and reasoning" is from 1630s.

science (http://www.etymonline.com/index.php?allowed_in_frame=0&search=science&searchmode=none)

c.1300, "knowledge (of something) acquired by study," also "a particular branch of knowledge," from O.Fr. science, from L. scientia "knowledge," from sciens (gen. scientis), prp. of scire "to know," probably originally "to separate one thing from another, to distinguish," related to scindere "to cut, divide," from PIE root *skei- (cf. Gk. skhizein "to split, rend, cleave," Goth. skaidan, O.E. sceadan "to divide, separate;" see shed (v.)). Modern sense of "non-arts studies" is attested from 1670s. The distinction is commonly understood as between theoretical truth (Gk. episteme) and methods for effecting practical results (tekhne), but science sometimes is used for practical applications and art for applications of skill. Main modern (restricted) sense of "body of regular or methodical observations or propositions ... concerning any subject or speculation" is attested from 1725; in 17c.-18c. this concept commonly was called philosophy. To blind (someone) with science "confuse by the use of big words or complex explanations" is attested from 1937, originally noted as a phrase from Australia and New Zealand.

이익과 공포

"그리고 일단 그들의 지도자가 되고 보니 우리는 제국을 현재 상태로 확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선 첫째로 두려움이, 다음에는 체면이, 끝으로 우리 자신의 이익이 그렇게 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우리가 주어진 제국을 받아들인 뒤 체면, 두려움, 이익이라는 세 가지 강력한 힘에 제압되어 제국을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도 아니고, 인간 본성에 어긋나는 짓도 아닙니다. 그런 짓은 우리가 처음 시작한 것이 아니며 약자가 강자에게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법칙입니다."

―투키디데스, 천병희 옮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숲, 2011) 1.75.3; 1.76.2


"이것은 인간 일반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즉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적인 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려고 하고 이익에 눈이 어둡습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강정인·김경희 옮김,
『군주론』 제3개역본(까치, 2008) 제17장 "잔인함과 인자함, 그리고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 중 어느 편이 더 나은가"


"인간의 본성이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는 원인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경쟁(competition)이며, 둘째는 불신(diffidence)이며, 셋째는 공명심(glory)이다."

―토머스 홉스, 진석용 옮김,
『리바이어던』(나남, 2008) 제1부 '인간에 대하여' 제13장 "인간의 자연상태, 그 복됨과 비참함에 대하여"

전환기


티모스

티모스가 정책 결정의 동인뿐 아니라 수단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가? 전자의 경우에도 정책 결정자를 합리적 행위자라고 부를 수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일반국제정치학 (상)

그것뿐이 아니라 國際政治學은―다른 社會科學의 경우와 차이없이―그 성립에 있어서 자연히 일종의 實踐的인 役務를 지니고 나온다. 즉 그것이 형성되는 사회의 정치적인 또는 政策的인 要請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것이 예사이다. 某種의 정책상의 욕구와 관계없이 오로지 眞理만을 위하여 이룩되었다는 학문은―비록 一個 학자의 主觀에 있어서는 허용된다고 할지라도, 한 사회에 통용하는 학문으로는 한낱 僞裝에 불과하리라는 의심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까닭에 국제정치학은 그것이 형성되어 온 고장·時期에서 우선 考察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그럼으로써 「우리」와의 관계가 저으기 명백하여질 것이며 또 동시에 우리가 지녀야 할 학문상의 입장도 스스로 명료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近間 우리가 많이 接하게 되는 외국의 연구와 교과서중에는 강대국의 세계정책적 입장과 및 時事觀이 這間에 은연히 出沒하고 있어서 그 실천적 면목이 躍如하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당연하고, 가치있고, 유용하고 또 실질적일지언정 강대국도 아닌 것같으며, 남에게는 後進이라는 이름의 나라와 지역에서 사는 학도들이 그것으로 自足하여 그 방법과 견해를 따른다면 그야말로 自家와 그 「고장」을 망각한 國際政治的 코핑(Copying)이라는 譏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서는 우선 國際政治學과 國際政治가 더불어 立脚하는 바 그 역사적 위치가 먼저 천명되지 않으면 아니될 것이다. 역사는 그대로가 곧 현대의 樣相은 아니리라. 그러나 그 所從來를 깊이 파고 들어 그 「현재」속에 맥맥히 生動하는 그 역사적 성격을 간취할 수 있다면 그것이 오늘날의 國際政治를 이해하는데 실로 막대한 공헌을 할 것이다.


"序",
李用熙, 『一般國際政治學』 (上) 重版, 博英社, 1983(1962 初版), 3-5면.


두 개의 첫 문장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서론",
김명호, 『초기 한미관계의 재조명: 셔먼호 사건에서 신미양요까지』, 역사비평사, 2005, 11면.


1985년 서울 주한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1986년 김세진·이재호 선배의 분신자살 사건은 필자의 머리에 '미국'이라는 두 글자를 확실하게 새기는 동시에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주었다.

"책머리에",
박태균,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 8·15에서 5·18까지』, 창비, 2006, 4면.

『변환의 세계정치』에 대한 한 서평

둘째, “늑대거미의 네트워크국가”의 건설과 “지식기반 복합국가의 다보탑 쌓기”의 “구상을 현실화하려는 정치주도세력”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도 없다. 이는 두 가지 요인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하나, 새로운 네트워크형 복합국가가 누구와 무엇을 위한 것인가가 명확하지 않다. 현재의 진보와 보수 모두가 변환의 국제정치를 읽고 있지 못하다면, ‘누가’ 누구를 왜 어떻게 불러낼 것인가. 그들을 호명하고자 하는 또 다른 그들은 누구일까. 다른 하나, 국제정치와 국내정치의 연계에 대한 분석의 부재다. 네트워크형 복합국가의 건설을 위한 국내적, 국제적 수준의 역사적 블록을 실험적이지만 제시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한 차원 높은 행위자의 국제정치학을 가지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구갑우 (http://www.kpec.or.kr/Site/web/sub_frameView.asp?prepage=more&menuKMCD=KP0065&selKMCD=KP0111&BKNO=973)

동아시아 국제체계

  다시 말하면 유럽의 조약관계는 그 자신의 원리에 기초를 둔다기보다는 오히려 지중해-서유럽관계에서의 중심-주변관계에 역사적 기초를 두고, 18세기 이후부터 서구중심주의 의식이 등장함에 따라 하나의 보편적 원리의 형태를 가지고 세계화된 이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등'한 양자관계는 세계적으로 타당한 원리라고 여겨졌으나, 어디까지나 동질의 국가주권간의 상호인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질사회와 대면할 때에는 반드시 적용된다고 할 수 없는 애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측면은 불평등조약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국제관계는 문자 그대로 국가주권(특히 단일한 국가주권)을 전제로 해야 비로소 성립하는 국가관계이며, 반드시 지역간 관계가 가진 전체성을 포섭하는 원리였던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화이질서적 중심-주변관계는 역사적으로 보아 동아시아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유럽대륙에도 존재했다는 것, 더구나 아시아와 중심-주변관계는 기능이야말로다르지만 유럽에서 발생했다고 하는 국가간 관계로서의 국제관계 이념을 그 일부에 포함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비추어볼 때, 국제체계에 관한 유럽모델과 동아시아모델은 내용이 다르다고 말하기보다는 기능이나 운용의 역사적 전개의 차이에 의해 보다 대조를 보이게 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渡辺昭夫, 권호연 옮김, 『국제정치이론』, 한울, 1997, 67면.

크세노폰, 『그리스 역사』

  이 작품은 그리스와 페르시아 등의 세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431B.C.~404 B.C.) 말기의 상황과 그 이후 시대의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서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승자인 스파르타에게도 큰 영향을 주어, 고유의 전통 체제 붕괴를 더 심화시켰다. 스파르타는 아테나이 해상 패권의 대체를 물려받으면서, 패권 추구의 길을 답습하게 되고, 이 같은 행보는 당연히 반발을 사게 된다.
  그리스의 아테나이, 스파르타, 테바이 등이 서로 다툴 때, 소아시아에서는 페르시아 총독 간에 패권 경쟁이 벌어졌다. 이 두 세계 자체 내의 갈등을 바탕으로 상호간에 이합집산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그리스 역사』에서 볼 수 있다. 이런 양상은 그리스와 페르시아 (혹은 이민족) 간의 이원적 대립구도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에게해를 중심으로 다원적인 이해관계의 충돌 양상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나아가, 이와 같은 과정은 전체적으로 볼 때 전쟁과 군사軍事가 차지하는 비중의 증가, 나아가 사회 자체의 군국주의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는가 하는 점을 적시하는 것이다. 자유의 시민사회였던 폴리스는 정치나 군사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헬레니즘 시대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다른 시대에 비교해볼 때 현저하게 적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자유와 민주의 폴리스 사회가 붕괴하고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전쟁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노정한다. 기원전 5세기 후반에서 4세기 전반에 걸쳐, 그 전구조적으로 더 단순했던 그리스 사회는 정치권력의 전문화,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등이 노정되는 헬레니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현상의 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머리말",
크세노폰, 최자영 편역, 『그리스 역사』, 안티쿠스, 2012, 6-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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